朝鮮 正祖代 壯勇營의 運營 實態
- Abstract
- 본 논문은 정조 12년(1788년)에 설치된 장용영의 운영 실태에 관한 연구로서 장용영의 설치 과정 및 조직과 인사, 그리고 재정 규모와 변화를 분석한 논문이다. 정조의 왕권강화 과정에서 나타난 장용영의 설치 배경을 다시 고찰하였고, 구체적인 역할과 특징을 분석하였다. 특히 기존 연구에서 밝혀진 장용영 재정을 토대로 재정 규모와 운영의 변화, 그리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정조는 조선의 22대 국왕으로 생부인 사도세자의 정치적 희생이라는 위기를 딛고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초기의 정치 주도권은 노론에게 있었는데, 노론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숙이 관여했던 정치 세력이었다. 이 때문에 정조의 왕권강화는 절실한 상황이었다. 정조는 이에 노론을 회유․포섭하여 정치권을 통합하고, 오군영과 군권을 장악하여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대신 친위군영인 장용영을 설치하고, 오군영에 편중되어 있던 군권을 낮추어 장용영에 집중시킴으로서 왕권강화의 발판으로 삼았다.
장용영은 조직이나 체제 면에서 오군영과 큰 차이 없이 운영되었다. 다만 오군영과 달리 장용영의 인사에 국왕인 정조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점이 특징적이었다. 정조는 장용영 대장을 비롯한 주요 관직에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을 선발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기존의 관리 선발 과정이나 원칙보다는 적임자의 능력이나 자신의 의향을 중요시하였다. 이에 따라 장용영의 위상도 오군영의 반열로 격상되었고, 군영대장으로의 승진 과정에서 장용영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는 변화도 일어났다. 한편, 정조는 국왕호위와 도성수비 병력 외에도 장용영 병력을 지속적으로 늘려갔다. 더불어 무예서 보급 등을 통해 장용영 병사들의 무예 향상을 도모함으로서, 장용영을 정예로운 군영으로 운영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한편, 장용영의 병력이 증가됨에 따라 이를 유지할 재정 확보도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조의 당초 기대와는 달리 추가적인 비용지출 없이 내탕만으로 장용영을 원활히 운영하기는 어려웠다. 정조는 정민시를 장용영 제조와 대장으로 임명하여 장용영의 재정을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정민시는 이에 장용영의 부족물자를 다른 기구들로부터 이속시켜서 장용영에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마련하였다. 장용영의 재정 규모는 정조 집권 후기로 갈수록 증대되는 양상을 보였는데, 다른 군영들의 운영 과정에서 노정된 폐해를 그대로 답습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축적된 장용영의 재정은 을묘원행, 현륭원 조성, 특히 화성성역에 집중적으로 이용되었다. 이처럼 장용영은 정조의 정치적 구상의 실현 위한 중요한 디딤돌로서 군사력을 마련과 재정 확충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운영된 것이었다.
- Author(s)
- 이방섭
- Issued Date
- 2010
- Awarded Date
- 2010-02
- Type
- Thesis
- URI
- http://dspace.hansung.ac.kr/handle/2024.oak/8412
- Authorize &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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