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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당 홍주원의 「燕行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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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은 無何堂 洪柱元이 네 차례에 걸쳐 正使의 자격으로 淸 나라에 연행을 다녀온 후 남긴 「燕行錄」을 연구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본고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청에 대한 홍주원의 의식이다. 홍주원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직접 겪었고 명청교체기의 현실을 직접 목도하였는 바, 청에 대한 그의 의식은 강력한 반감(反感)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연행록」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다양한 시적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2장에서는 홍주원의 생애와 각 연행별 상황, 「연행록」의 구성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홍주원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것은 홍주원이 이정귀의 외손으로서 당대 문인들에게 인품과 학문적 재능을 널리 인정받았다는 점과 선조의 부마가 되어 대청 연행에 네 차례나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홍주원의 네 차례 연행은 1647년, 1649년, 1653년, 1661년으로 홍주원의 정치적 능력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행록」 구성상의 특징은 모두 시로 구성되었다는 점과 시들이 각 연행별로 기록되지 않고 형식별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18세기 연행록이 산문 중심으로 구성된 것과 변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3장에서는 연행시의 특징을 도출하였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청에 대한 否定 意識과 使臣으로서의 自愧感’이다. 청이 중원의 패권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주원은 청 왕조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강력한 비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식은 오랑캐 나라의 신하로서 사신 가야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드러나고 있다.
둘째, ‘明王朝에 대한 恨歎과 復興에의 期待’이다. 홍주원은 정통한족왕조인 명나라가 멸망하고 오랑캐인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였다. 이는 하늘에 대한 원망이나 흥망성쇠에의 한탄 등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한편, 홍주원은 명나라가 멸망했지만, 당시 남명세력이 잔존해 있던 사실을 통해서 명왕조의 부흥을 기대하였다. 이는 ‘鏌鎁劍’, ‘一旅’ 등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셋째, ‘使行길의 어려움과 人間的 交遊를 통한 解消’이다. 청나라에 대한 홍주원의 부정의식은 홍주원으로 하여금 사행길의 어려움을 배가시켰다. 이는 육체적·정신적 괴로움을 직접적으로 표출한 것, 사신단 일행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시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홍주원은 이러한 어려움을 사신단 일행들과 수창(酬唱)을 하거나 중국 관료문인이 아닌 일반 문사들, 또는 역관들에게 시를 주는 등 인간적 교유를 통해서 해소하였다.
홍주원은 아직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바가 없어 우리 문학사에서 익숙한 인물이 아니다. 이에 본고는 홍주원의 「연행록」을 대상으로 하여 홍주원의 생애, 연행록의 구성 및 특징, 연행시에 나타나는 홍주원의 의식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본고가 17세기 중반 대청 연행의 초창기 양상과 연행록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해 본다.
Author(s)
이상우
Issued Date
2013
Awarded Date
2013-08
Type
Thesis
Keyword
홍주원연행록연행시대청의식
URI
http://dspace.hansung.ac.kr/handle/2024.oak/7142
Affiliation
한성대학교 대학원
Advisor
정후수
Degree
Master
Publisher
한성대학교 대학원
Appears in Collections:
한국어교육학과 > 1. 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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