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omposition:분해

Abstract

나는 나 자신에게 닿는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고자 이 시리즈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작업에서 배제되어있는 것만 같았던 나라는 존재를 이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이보다 훨씬 전부터 감정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무의식적으로 하고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색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나는 밝은 색채보단 어두운 색을 선호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작업의 전체적 느낌을 좌우하는 배경으로 어둡고 몽롱하고 차분한 감각을 강조하는 색감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스스로 감정에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감정을 주제로 삼는 것이 다른 어느 주제보다 편하였고 솔직한 주제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때론 숨기고 때론 드러내는 감정이라는 요소는 나에게 가장 먼저 닿는 주제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감정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공개한다. 감정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복잡하고 포괄적인 주제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특정 감정을 분해하여 얻어지는 요소들을 화면속에 구성하는데에 집중한다. 화면안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시각화되어진 감정들이 부유하듯 떠다니고 있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맞물리기도 하며 서로의 몸통을 관통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규칙을 설정하지 않았다. 분해된 감정들이 자유롭게 화면속을 부유하는 것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많은 주제가 오롯이 계산적인 분석을 통해 드러가니보다 우연을 통해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 또한 그러하다. 우연히 안도 다다오의 건축철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접한 후 직선적인 건축에서 나오는 아찔한 긴장감과 고요함에 온몸이 반응한 적이 있다. 이는 지금껏 작업을 위해 계산하고 방법론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방식과는 확실히 차별된 느낌이었다. 솔직한 감각 그대로를 드러내고 싶었던 나는 그 주제를 채택해보기로 하였다. 직선적인 건축에서 나오는 고요함이라는 요소는 나 스스로 무언가 의식하고 인식하기 전 가장 일차적으로 나에게 닿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느낀 급격한 소스라침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고요에 관한 주제를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인위적이고 자연적이지 않은 직선이라는 요소가 주는 심한 긴장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는 점이다. 얼핏봐서 상반된 두 요소가 주는 각각의 느낌은 나에게 너무나도 뚜렷하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긴장감 또한 작은 소리조차 허용하지 않은 고요함이라는 주체에 포함된 또 하나의 구성요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해> 시리즈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화면을 구성함에 있어서 꼴라쥬방식을 채택한 이유도 이것이다. 나에게 고요라는 요소로 처음에 다가왔지만 이것이 점차 나라는 의식이 개입되며 분해되는 과정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기하학적인 여러 덩어리들은 주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구성요소들이다. 구성요소들은 각자의 성질이 있지만 하나의 큰 덩어리의 일부분으로써 존재하고 있다는점을 나타내본다. 각자의 자리에서 부유하는 듯보이지만 이들은 서로 맞닿고 연결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살아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비로소 나에게 다가왔을 때 고요를 너머 복합적인 감정이 요동친 것이다. 캔버스에 구성된 요소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하나의 성질로만 보이는 것들을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역할을 해준다.